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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cfpa 댓글 0건 조회 601회 작성일 23-02-16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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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3021514234676178



늦겨울 서초동이 시끄럽다. 압수수색 영장 심사제도 변경을 두고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이웃이 충돌했다. 원색적인 공방이 오가진 않지만 물밑으로는 이미 서로를 향한 포문을 열었다.

마음이 급한 쪽은 선공을 당한 검찰이다. 법원이 덜컥 압수수색 영장 발부 요건을 강화하는 형사소송규칙 개정 방침을 밝히면서 시간에 쫓기게 됐다.

다음달 14일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고 대법관회의에서 최종안이 의결되면 오는 6월부터 검찰이 휴대폰이나 컴퓨터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할 때 어떤 검색어를 살필지 구체적으로 적어내야 한다. 법원이 압수수색 영장을 심사하면서 구속영장 심사 때처럼 사건 관계자를 직접 대면 심문할 수도 있게 된다.

검찰 입장에선 수사기밀 유출이나 수사 지연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범죄 혐의자가 컴퓨터 파일명을 사건과 관련 없는 엉뚱한 이름으로 붙여 은폐하려 했던 사례는 숱하다. 법원이 구속영장 발부를 머뭇거린 사이 도주했던 라임사태 주요 피의자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처럼 압수수색 영장 요건 강화로 발생할지 모를 수사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검찰뿐 아니라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수사처에서도 나온다.

법원이 제도 개정에 나선 이유가 엉뚱한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법조계에선 디지털 증거에 대해 제한 없는 압수수색 제도를 손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영장 범위를 벗어난 정보는 법정에서 유죄 증거로 사용될 수 없지만 수사기관에 범죄 혐의와 무관한 정보가 들어가는 것은 별개의 영역이다. 기본권 보장의 마지막 보루를 자처하는 법원의 진정성을 마냥 비판할 순 없는 이유다.

문제는 법원이 개정 방침을 내놓은 시점이 갑작스럽다는 점이다. 법원 방침과 반대편에 선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은 물론이고 중립지대 혹은 법원 입장에 좀더 가까울 변호사업계에서도 판·검 출신에 따라 의견이 첨예하게 갈린다.

최근엔 검사 출신으로 법관에 임용된 3년차 판사까지 법원 내부게시판에 규칙 개정을 재고해달라는 글을 올렸다.

대법원이 제도 변경을 법률 개정이 아니라 사법부 재량권인 형사소송규칙 변경으로 추진하면서 논의 범위가 상당히 제한된 상황을 두고도 뒷말이 나온다. 국회에서 법률 개정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수사 체계를 넘어 국민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형사 절차 변경인 만큼 사회적으로 숙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형사전문 21년차 변호사는 "의도가 선하다고 해서 결과까지 선하다는 보장은 없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나쁜 놈' 잡을 무기를 제한하지 말아달라는 검찰의 절실함에도, 인권을 방어하겠다는 법원의 원칙론에도 공평하게 적용될 말이다.

언젠가는 검찰이 영장 청구를 위해 범죄의 세계 실시간 검색어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때까지 가는 과정이 구설수 없이 법과 사법체계의 존재 이유에 부합하도록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로 채워지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변수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존경하는 재판장님들의 현명한 판단을 구한다.